경주 사정동 척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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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사정동 척화비(慶州 沙正洞 斥和碑)는 경상북도 경주시 사정동에서 출토된 척화비로, 높이는 1.5m입니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 뜰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척화비는 조선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서양과의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추진하면서, 서양 오랑캐의 침입을 경계하고 국민들에게攘夷(양이) 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세운 비석입니다. 1871년(고종 8년) 신미양요 이후 서울과 전국 각지에 200여 기의 척화비를 세웠습니다.
경주 사정동 척화비의 비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새겨져 있습니다.
- 정면: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 서양 오랑캐가 침범할 때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는 것이고,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
- 측면: 戒吾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 (계오만년자손 병인작 신미립): 우리 만년 자손에게 경고한다. 병인년(1866)에 만들고 신미년(1871)에 세우다.
경주 사정동 척화비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입니다. 다른 지역의 척화비에 비해 상태가 좋은 편이라고 합니다.
척화비는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 이후 흥선대원군이 청나라로 납치되고, 개화 정책이 추진되면서 대부분 철거되거나 훼손되었습니다. 하지만 경주 사정동 척화비를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 일부가 남아있어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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